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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머무는곳

연꽃 이야기

한석조 2006.02.20 조회 수 : 2923

연꽃

꽃말: 소원해진 사랑




옛날 동산 기슭에 한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 두 부부에게 옥같이 아름다운 연이라는 무남독녀 외딸이 있었다. 갖가지 꽃들이 방글방글 피어나는 봄이 오면 아버지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고 외동딸 연이는 나물을 꺽었고, 겨울이 오면 아버지 어머니 나무하러 나가고 연이는 집에서 바느질을 하며 근심걱정 모르고 오붓이 살아가는 일가였다.

그런데 외동딸 옥이가 열여섯 살 되는 그 해 이동산 기슭 마을 밖 큰연못에는 어디서 왔는지 뜻하지 않은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구렁이는 낮이나 밤이나 가릴것 없이 소를 보면 소를 잡아먹고, 개를 보면 개를 잡아먹고, 사람을 보면 사람을 잡아먹어, 그동안 평화롭던 마을에 한없는 재난을 가져다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로 인하여 누구나 함부로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밭에 나가거나 나무를 해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 안되어 집집마다 먹을  낟알이 다 떨어지게 되었으며 땔나무가 다 떨어지게 되었다. 두말없이 연이네도 당장 먹을 낟알이 떨어지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나가서 그 구렁이를 때려 죽이고야 말겠어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눈을 뜨고 앉아서 굶어 죽을수야 없지안아요?"

그러자 아버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안된다. 이 애비에미의 살점을 뜯어 먹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내보내 죽게 할 수는 없다. 그래 못 들었느냐? 어제도 그저께도 이웃집 아들 서넛이서 몽둥이며 칼을 가지고 나갔다가 그 우악하고 무도한 구렁이에게 잡혀먹히고 말았다는 것을!"

그 다음 날, 참던 연이는 또 분연히 일어났다.

"아버지, 어머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나는 꼭 그 구렁이놈을 쳐죽여 마을 총각들의 원한을 갚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해를 제거하고 말겠으니 말리지 말아 주세요!"

그러자 이번에도 아버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애야, 안 된다. 너 또 못들었느냐? 어제도 저 뒷집 아들 다섯형제가 도끼며 활을 가지고 연못에 나갔다가 미쳐 말할 사이도 없이 그 구렁이 놈에게 잡혀 먹혔다는 것을!"

하긴 이 마을에서 한다하는 남자들이 날마다 구렁이 잡으려고 마을 밖 연못가로 나갔다가 몽땅 구렁이 밥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연이는 의분에 떨며 나섰으나 그 때마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그를 주져 앉히곤 했다. 나중에 아버지 어머니는 연이에 대한 걱정으로 밤이면 그의 손목에가굵은 실을 매고 그 끝을 자기의 팔목에 매고 잤다.

이런 어느 날 밤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곤하게 쉬고 있는 때를 틈탄 연이는 팔목에 맨 실끝을 살짝 풀어 기둥에 맨 뒤 미리 준비했던 장도리칼을 들고 집문을 나섰다.
그는 곧바로 마을 밖에있는 큰 연못으로 내달아 갔다. 그가 얼마쯤 뛰어간 바로 그 때 숲속으로부터 백발 수염이 생생한 노인 한 분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연이는 그가 다가오자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몹쓸 구렁이 놈을 보셨는가요?"

"음 ,보구말구! 하지만 너는 가냘픈 계집의 몸으로 어떻게 그 놈을 당한단 말이냐?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사이 백여명도 넘은 끌끌한 젊은이들이 달려들다가 모두 그 놈의 밥이 되고 말았는데! 내 권하거니와 너도 어서 집으로 되돌아 가거라!"

"안 되요. 할아버지! 그 백명 젊은 총각들은 모두 저의 마을 사람들 입니다. 나는 꼭 그들을 위해 피맺힌 원한을 갚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그 놈을 없애 버리고야 말겠습니다!"

그의 단호한 말에 할아버지는 할말을 잃었다 .

"그래, 너는 꼭 그 놈과 한 판 벌여 보겠단 말이지?"

"예, 꼭 해내고 말뿐 아니라 꼭 그놈을 죽여 버리고야 말겠습니다. 그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앞산이라도 뛰어오르겠습니다!"

"그래 너는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단 말이냐?"

"죽는 것이 겁나면 제가 어찌 이렇게 뛰어나오겠어요? 오직 그 구렁이 놈을 때려 죽일수만 있다면 끊는 가마에라도 주저없이 뛰어 들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매우 감격하여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좋다! 네가 이제 곧 그 구렁이 놈과 싸우겠다니 내 꼭 너를 도와주마! 자 봐라 나에게 칼과 창을 수놓은 치마가 하나 있는데 이것을 어서 껴입어라. 그러면 너는 꼭 그 구렁이 놈을 죽여 버리고 마을 총각들의 원한을 갚고 마을 사람들의 우환을 제거해 버릴 것 이다!"

연이는 매우 기뻐하며 할아버지가 내주는 눈부신 그 칼창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넙죽 업드려 절한 뒤 연못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연못에 이르자 돌연 한 가닥 큰 바람이 일고 모래가 날리고 돌리 움직이더니 못 속으로부터 집채 같은 오백년 묵은 구렁이 한 마리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나왔다. 연이는 두 눈에 쌍불을 켜고 장도리칼을 번뜩이며 맞받아 나갔다. 그러나 연이는 불과 얼마를 못 싸운 채 그 놈의 입에 삼켜지고 말았다.
그러나 뉘알았으랴! 연이를 삼킨 그놈은  좀 있더니 온 몸을 구불구불 혀를 치며 비명을 지르며 돌아갔다. 연이의 치마에 새겨진 무수한 칼과 창이  그 놈의 배를 찔러댔던 것이다. 그 놈은 연못가에서 이리 뒹궁 저리 뒹굴다가 날이 밝자 그만 죽어 버렸다.
이로부터는 다시는 구렁이의 동정이 없는지라 마을 사람들이 나와보니 마침 이 구렁이는 죽어 있었다. 그들은 그 구렁이 놈을 연못에 쳐 넣고 그간 그 놈과 대적하다 죽은 젊은이들과 연이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 이런일이 있은 뒤부터 마을은 화평하게 되었다.

하루는 연이의 아버지 어머니가 죽어간 연이를 생각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연못가에 나와 보았더니 못 한가운데는 전에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이것은 틀림없는 연이가 변해 핀 꽃이요!"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꽃이름을 연이의 이름을 따서 연꽃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이로부터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 피어나게 된것이다.